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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바깥 Off the Map'의 시작은 2013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일 같이 지나다니는 한강에 아무런 경험과 기억이 없다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하여 한강에 직접 만든 배를 띄운 ‘랑랑 프로젝트’(안성석X정혜정)를 시작하였다. 한강에서 ‘호락질 호’를 타며 각자의 방식으로 한강과 서울의 모습을 기록하였으며, 2015년에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한강을 무대로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고, 2017년에는 이와 관련한 활동을 모아 ‘랑랑’책으로 발간하였다.

미술가 정혜정은 이러한 기록과 탐사를 통해 한강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며 역사적 사실과 문헌 기록, 개인적 경험 등의 객관적, 주관적 정보 등을 2014년부터 현재까지 수집하고 있다. 그리고 3차원 공간 안에 위 정보들이 각각의 좌표로써 이야기를 담는 아카이빙 기반의 한강 지도를 구상하였다. 2017년 ‘랑랑’ 출판물에 ‘지도 바깥’이라는 챕터의 제목으로 텍스트와 드로잉 기반의 형태로 발표하였으나 ‘인쇄물’이라는 2차원 공간 안에 3차원 공간을 구현하는 한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www.offthemap.co.kr 에 접속하며 볼 수 있는 ‘지도 바깥 ver2'은 보통의 지도와는 달리 높이, 너비, 깊이를 반영한 3차원 공간의 지도로써 각각의 정보는 3D 가상공간 위에 하나의 좌표로 놓이게 된다. 관람자는 스스로 방향 조작을 하며 입체적으로 지도를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활적, 심리적 공간인 한강을 배경으로 그곳에 있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온갖 이름 없는 사물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동식물들, 나아가 우리세대와 조상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기억에 경이감과 존경을 바치며, 당신이 이 지도의 조각들을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에서 당신만의 궤적으로 한강의 구석구석에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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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


-기존의 인쇄물에서의 지도(지도바깥, 2017)가 물리적공간 (x,y축)에 기반을 두고 심리적공간(z축)으로 깊이를 더했다면, 웹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이 지도는 좌표의 내용에 따라 좌표의 색과 깊이(z축)를 반영한다.


DEPTH
-수면에 가까운 좌표는 사실에 기반한 가벼운 정보에 관한 것이다.
-깊어질수록 실용적, 사라진 것, 발굴된 것, 기이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좌표일수록 심리적, 주관적으로 의미가 깊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COLOR
-사실에 기반한 현상과 정보는 파란 계열의 색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는 보라 계열의 색이다.
-시나 소설에서 발췌한 것과 주관적, 심리적 경험의 정보는 붉은 계열의 색이다.
-자연, 동물 등의 정보는 초록 계열의 색이다.
-좌표는 각각 계열의 색을 기반으로 하여 약간의 버레이션을 주었다.


기획, 3D 지도 제작: 정혜정
웹 개발: 조호연
후원: 서울문화재단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지원 창작준비형


Copyright by Jung, Haejung




균형잡기 고인행 광나루 강수욕장 광진교 광진 수난구조대 긴 무지개 김현옥 전 서울시장 난지도 난지도 사람들 노래하는 남자 농바위 당정섬 땜빵 마포대교 맥주 머머리섬 목자판 물고기 바람 반포 수난구조대 반포 수상택시 승강장 밤섬 밤섬 폭팔 백마도 불발탄 상괭이 새빩안 기관차 색색의 구들 선유도 성수대교 서거정의 시 석촌호수 성간의 시 세빛섬 수달 수백개의 촛불 수상택시 송파진 신곡 수중보 신저자도 쌍바위 아파트 양말산 여의도 여의도 수난구조대 오리배 외동가리 올림픽대교 20분간의 고독 이자벨라 버드비숍 인도교 자라 자전거족 잠수교 잠실 잠실수중보 잠실섬 잠원 한강수영장 장항습지 저자도 전망이 좋은 자리 천번풍경 철새들이 많이 앉아있는 자리 캠핑 큰빗이끼벌레 투신 퐁당 플로팅 편의점 한강간다 한강대교 한강대교 다리확장 한강변 최초 외국인 프랑스 신부들 한강철교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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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간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2011년 투신자 196명중 95명이 사망 하였으나 2012년 CCTV 설치 이후에 구조율이 높아져서 2014년 396명중 11명 사망, 2018년 기준의 생존률은 96.7%에 달한다. 참고로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면 구조된 후 벌금 200만 원이 나온다.
한강 다리 높이는 대략 15미터이고, 다리 위에서 투신할 경우, 표면장력으로 인해 물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물 표면과의 충돌시 받게 되는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익사하거나 사망한다고 한다.
한강 바닥에는 인생 리셋 버튼이 있어서 그걸 누르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슬픈 농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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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강변의 아파트는 서울의 아파트값을 올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같은 단지, 같은 동이라도 ‘한강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는 이유만으로 매매가가 많게는 수억 원씩 차이 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의 경우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195m²)는 41억5000만 원을 호가한다. 반면 같은 평수지만 한강이 보이지 않으면 이보다 10억 원가량 낮은 31억5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성동구 성수동의 갤러리아포레아파트(241m²) 역시 한강 조망 여부에 따라 최저 40억 원, 최고 50억 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한강에 인접한 아파트라는 기본 프리미엄에, 한강 조망권까지 얹히면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셈이다.
지난해 말 1차 분양한 서초구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의 경쟁률은 18.7 대 1을 기록했다. 9월 2차 분양에 들어가는 이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4000만 원이 넘지만,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 아파트 구입을 고민 중이라는 이모 씨(43·여)는 “한강 조망권의 집을 산다는 건 단지 ‘집을 산다’는 수준의 의미를 벗어나 한강을 영구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단지 내에서도 자금력을 확보한 뒤 바로 몇 개 층 위의 ‘한강 조망권’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부동산 관계자들은 전했다. 부동산114 김은진 과장은 “매매 문의가 들어올 때도 ‘한강이 보이느냐’고 먼저 묻는 사람이 많다”며 “한강 조망권 입주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치열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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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서울 속의 낙도 잠실마을 딱한 사정>
-1965.12.25. 경향신문 기사
서울의 낙도, 서해 푸른바다 속의 외딴 섬이 아닌 수도 서울의 한모퉁이, 뚝섬 유원지 건너편 한강으로 둘러싸인 90여만평의 모래밭에 3백여가구 2천여 주민이 문명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곳은 이조때 궁중의 뽕잎을 대었다해서 잠실이라 이름했다. 이 섬에 조그만 콘세트 건물이 하나있다.
실험기구도 문명의 이기를 설명할기구도 없이 1학년 1학급씩으로 6학년까지 6학급, 3백16명이 공부하는 신천초등학교, 우편배달부가 찾다못해 돌아가는 곳, 서울특별시 성동구 신천동, 삼성동, 잠실동의 기맥힌 현실을 돌아본다. 부락민들은 뱃사공아니면 모래밭의 채소농사로 수준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신천국민교장 배은식씨가 ᄄᆞᆨ한 사정을 호소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 여름 대홍수에 농사는 전멸되고 소채밭은 모래밭으로 바뀌었다. 도둑맞을 물건이 없어 도둑이 없다는 가난한 학부형들이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내주는 그 사실만이라도 우선 감사하지만 기성회 운영을 바란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일 이라면서 강건너 워커힐에서 밤이면 휘황찬란하게 비쳐주는 전깃불을 부럽게 바라보는 낙도의 어린이를 위해 “학우 돕기 운동이라도 별여 주었으면”하고 말한다.

전화를 보지 못한 6년생 최홍석(13)군은 “저절로 소리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지난 여름 장마가 이 낙도를 삼켜버렸을 때 SOS를 알릴 통신수단이 없어 수장의 위기에서 미군 헬리콥터로 간신이 살아났다. 그래서 이곳 어린이들은 백화점을 시장, 목욕탕은 수영하는 곳, TV는 사람나오는 기계로 통하지만 비행기를 탔다고 자랑하는 기막힌 현상이다.

이곳 주민들은 가물거리는 등잔불로 나날을 보내며 바람에 날리는 풍진에 호흡기질환 환자가 많다. 또한 정원이 되어야 건너는 나룻배가 유일한 교통기관이다. 동사무소도 우체국도, 파출소는 물론 문명의 이기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 흔한 자매학교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빛을, 위급을 알릴길을, 재난을 피해넘을 다리가 진정 서울의 낙도 잠실주민들의 소망이라고 배교장은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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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2018.5.25. 오전에 망원지구 슬로프에 산책을 갔다가 자라를 발견하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실물 자라였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은 없었고, 내 근처에는 청소부가 큰 쓰레기 마대자루를 들고 강변에서 밀려온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을 빗질하고 있었다. 잠시 다른 곳을 보고 다시 자라있던 곳을 보니, 자라가 사라져있었다. 바로 옆 청소부아저씨에게 방금 이 자리에 있던 자라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을 피하던 그가, 나의 여러 차례의 제촉으로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본인이 자라를 버렸다고 했다. 바로 손에 쥔 쓰레기 자루에 넣었다는 것이다. 자라를 꺼내달라고 하자, 집게로 자라 등껍질을 집어서 꺼내면서 어짜피 다시 올라올거라고, 다시 올라오면 정말로 버린다고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자라가 그의 말처럼 다시 헤엄쳐 뭍으로 올라왔다. 그가 나를 쳐다보고, 무언의 신호를 건넸다. 나는 뭍으로 올라온 자라를 손으로 잡아서 강의 다른 방향으로 아주 멀리 던졌다. 집에 돌아와 자라에 관해 찾아보니, 자라는 알을 낳을 때만 뭍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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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수난구조대

02-3706-1942 익수자 발견시 신고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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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빛섬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작하게 된 사업이며, 현재 내부에는 고급레스토랑, 까페 들이 들어서 있다. 2007년 완성되었지만 침수로 인해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2014년 재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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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수중보

한강 수위를 고르게 유지하도록 제작되었다.
이로인해 한강물은 흐르지 않는 물이 되었다. 하류에는 신곡수중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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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

잠실개발로 인해 남류하던 흐름이 폐쇄되면서 만들어진 호수이다. 2015년 네덜란드 설치미술가인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만든 러버덕이 석촌호수에 전시되어 수만명의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석촌호수 앞에는 555m의 123층높이로 제2롯데월드가 세워졌고, 건설 이후에 석촌호수의 수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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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의 시

서거정 (1420-1488)
강가 빨래하는 색시 얼굴 꽃과 같은데
어려서부터 한평생 빨래하며 지냈지
아침엔 흰 발을 씻으니 눈빛 같고
저녁에 흰 팔을 씻으니 서릿발 같구나
아침마다 저녁마다 씻고 또 씻어
제 한 몸 깨끗해져 흐뭇한 마음이라네

고치에서 실 내리니 빙사 더 희고
밤바다 흰 달 아래 찬 북을 밝혔네
가는 비단을 짜 마름질하여 옷을 만드니
교초보다 가늘고 월사보다 가볍네

씻고 나니 소박한 화장 물 밑에 비치니
소아도 강비도 비길 바 없지
문득 광풍이 불어 천지가 어두워지자
먼지들이 자욱이 일어나 갈 곳을 잃었네
허둥지둥 흙탕물 가운데서 넘어져 버리니
옥 같은 얼굴은 물론 옷까지 죄다 버렸지

시누이 문에 나와 색시를 기다리다
빨래가 왜 이리 늦었냐고 성화라네
색시가 돌아오자 시누이 손뼉 치며 웃으며
더럽고 못나 우리 집 식구 아니라 하네
시누이 나이 이제 겨우 열세 살

그때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았었지
시누이야, 시누이야 색시 보고 웃지 말거라
이 한을 다른 날 너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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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의 시


검은 구름 한 조각 푸른 하늘에 나직한데
가끔 들리는 먼 물가 외로운 학의 울음.
지난 밤 사이 나루터에 남풍이 세차더니
서강물결 걷어다 빗발 되어 날리네.
고기들 나고 들며 다투어 거품 뿜는데
물귀신은 물결치고 신령은 춤추네
섬들을 휘어 싸서 홍몽으로 돌아가니
창에 서린 서늘한 기운 남은 더위 가시네.
강 기러기 뒤섞여 날며 끼룩끼룩 우는 소리
마름과 연 바람과 물결 따라 이리저리.
어부는 닻줄 잃고 강에서 소리치는데
큰 배는 옆으로 기울고 작은 배 떠내려가네.
-조선시대 문인 성간(1427-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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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바위

농바위라고 불리던 큰 바위가 있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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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머리섬

머머리섬 留(유)島(도)
개가 누워있는 모양의 섬. 머리, 몸, 네개의발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보구곶리 북쪽 한강하구이며 한강의 끝을 이곳이라고 본다. 입과 코 모양에 높고 깊은 동굴이 있고 그 밑은 바닷물이 드나듬 그곳에 큰 이무기가 살았다고 한다. 여름철 한강 상류에서 홍수가 나면 여러가지 것들이 떠 내려와 이섬에 머무는데 그 가운데 뱀이 특히 많다고 한다. 땅군들이 뱀을 잡으러 많이 왔었다고 한다. 현재는 군사분계선 안에 있어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으나 자유스럽게 날아다니는 학을 비롯하여 왜가리, 두루미 등의 조류들에게는 이 섬이 조용하고 먹을 거리인 뱀이 많아서 지상의 낙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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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 강수욕장

1950-60년대 한강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고 한다. 이곳 외에도 뚝섬이나 노들섬의 백사장으로 사람들이 여름철 피서를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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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실바람인지 남실바람인지 산들바람인지 건들바람인지 흔들바람인지가 한강에서는 중요하다. 그 바람이 관리되고 있는 물, 한강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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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행

'顧(고)人(인)行(행)'

서강 나루 일꾼들, 소보다 건강하여
두 어깨 울끈 솟아 흙더미 같다
장삿배에서 이문을 교묘히 노려
거상이 돈 뿌리면 일 맡아 분주하다

이른 새벽 무리지어 부두로 나가
하역량을 헤아리며 한참을 서 있다가
정오세 남풍 불어 밀물이 틀림없으면
거룻배 만나서 사사롭게 주고받지

종일토록 볏짐 져서 품삯 받으니
근력으로 밥벌이 행여 뒤질세라
큰 기를 구부정히 고개 들어 헐떡이고
동아줄과 등태를 손에 꽉 쥐고 있다

나이 육십에도 어깨를 쉬지 못해
등짝 갈라지고 살갗은 쭈글쭈글
한평생 노력하여 제 밥 벌면서
늙어 일감 없을까 걱정할 뿐.

생선찌개 흰쌀밥에 흉년을 몰라
사내는 나무하고 아낙은 술 거른다.
길거리 비렁뱅이는 무얼 하는가
입 구멍 때문에 구걸이 고작이라니.
-권헌(1713-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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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택시

한강수상택시는 2007년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등장하였으나 수익성 문제로 중단되었다. 중단직전에는 이용승객이 하루 10명 미만일정도로 적었다. 수십척의 수상택시들은 이곳에 정박되어 몇년째 녹슬어가고 있다. 한강 곳곳에 남겨진 17개의 승장강은 넘어가지말라는 안내판과 함께 텅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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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수난구조대

02-3706-1962 익수자 발견시 신고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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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수상택시 승강장

2015년 10월 18일 랑랑 공연을 하기위해 베이스캠프로 반포수상택시승강장을 이용했다. 수상택시 사업은 망한지 몇년이 되었고 한강 곳곳에는 텅비어버린 수상택시승강장만 남아있었기에 아주 쓸모가 있었다. 3일간의 공연을 마치고 이곳에 남은 짐을 찾으러 갔을 때, 누군가 왔다가 흔적이 있었다. 짐들이 어질러져 있었고 그 중 부표로 쓰였던 스티로폼들을 연결해놓은 '줄'이 사라졌다. 끄트머리의 매듭을 풀면 구멍으로 연결된 줄이 풀려나왔을텐데, 스티로폼을 손으로 뜯어가면서 줄을 급히 빼낸 흔적. 하루전 토요일밤, 이곳 반포수상택시승강장에서 투신한 어떤 이가 구조되어 올라왔다는걸 지나가는 친구가 봤다고 했다. 이 밧줄이 투신자 구조를 위해 쓰여졌던건가. 아니면 투신자가 이용해서 썼던건가. 2014년 한강에서 투신한 사람의 집계수는 394명이라고 한다. 이날 한강의 밤은 안개가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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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기

한강에 있는 세개의 수난구조대들은 투신자들을 구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다. 강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잃고 신호를 계속해서 보낸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대해서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어야만한다. 자칫 서있는 다리의 균형을 놓쳐버리면 물 속에 빠질 수도 있다. 기껏 운이 좋아야 수난구조대원들이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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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남자

키가 크고 멀쑥한 남자는 강둑에 캠핑용 의자를 펴고 썬그라스를 끼고 앉아있다. 배가 멀리서 다가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배는 다가온다. 그도 배를 향해 돌 위를 몇걸음 걷는다. 배와 그와의 사이는 고작 1미터 안팎이 된다. 배는 시동을 끈다. 그 순간 그곳은 고요함으로 가득찬다.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그대 돌아서 가던 그 길 발자욱마다 꽃이 펴도 가슴에 남아 있는 아주 예쁜 소리를 너는 듣고 있겠지 파도가 노래하네 새들은 춤을 추네 품팜 처얼썩 품팜 처얼썩 귀여운 꽃들이 듣고 있네 아니 노래하네 아니 춤을 추네 파도가 노래하네 새들은 춤을 추네 품팜 처얼썩 품팜 처얼썩 귀여운 꽃들이 듣고 있네 아니 노래하네 아니 춤을 추네 하늘은 뉘엿뉘엿 해가 내려앉아서 어둑해져가고 옆자리 돌위에서 낚시 하던 아저씨의 손끝과 연결된 낚시대의 찌는 검은 물속에서 형광빛을 띄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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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교

1936년에 완공되었다. 한강에서 3번째로 완공된 다리,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동하는 길목이라 한강 남북으로 오가는 배의 수요가 많아서 건축되었다. 1950년 6.28 인도교가 폭파되고 1시간 30분 뒤 폭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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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판

목자판 (수위표) 한강의 수위를 가시적으로 보여줌. 전통시대의 수표와 동일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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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좋은 자리

이곳에는 탁 트인 넓직한 한강을 감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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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1977년 4월 착공되어 1979년 10월 16일에 준공식을 기행한 교량이다. 성수대교는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되었다. 하지만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정 시공인 이슴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데 시청 직원들에게 뇌물을 먹이는 등 이러한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하였다. 건설 당시 다리 밑 부분을 이루고 있는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연결 부분도 심하게 녹슬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 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름새에도 결함이 있었다. 또한 공사 도중 볼트 삽입중 볼트를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구멍의 모양이 변형되어 볼트의 강도가 약해지는 등의 부실공사가 만연했고 결국 성수대교는 서서히 내려앉게 된다. 또한 성수대교의 설계하중은 32.4톤이었지만 40톤이 넘는 과정차량과 대형차량 등이 자주 드나들었다. 결국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8분 10-11번 교각 사이 48미터 트러스가 붕괴된다.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버스 1대 등 6대가 강바닥으로 추락하였고, 총 49명의 탑승자가 추락한다. 승용차 2대와 승합차 한대는 트러스가 무너질 때 같이 떨어지고, 나머지 2대는 교각에 걸쳐 있따가 결국 강바닥으로 추락한다. 16번 버스 역시 붕괴당시 상부 교각에서 버티고 있었으나, 결국 360도 회전하며 추락해 구조가 모두 찌그러진다. 49명이 추락해 17명이 부상당하고, 32명이 사망한다. 사고 여파로 정부는 전국의 모든 건물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 전체 고층건물의 1/7은 개축이 필요했으며 전국 건물의 80%는 재수리가 필요했으며, 단 2%만이 안전하다는 통계가 나왔다. 사고 후 한강 대부분의 다리는 물론이거와 시설물까지 점검되었고, 그 결과 당산철교, 광진교, 한남대교, 방화대교 등이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당산철교와 광진교는 모두 철거후 재시공하였고, 한남대교는 옆에 임시교각을 만들고 재시공, 양화대교도 상판을 뜯고 재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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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의 구들

사시사철 색색의 구들이 줄지어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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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 수난구조대

02-3706-1952 익수자 발견시 신고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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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라 버드비숍

개항기에 조선을 찾았던 서양사람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여행가인 비숍(Isabella Bird Bishop)여사 역시 조선의 내륙지방을 탐사하기 위해 한강의 물길을 이용하였다. 그녀는 1894년 4월 중순부터 약 한달 간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과 북한강을 여행하며 한강 유역을 탐사하였다. 비숍여사의 한강 탐사기록은 그녀가 저술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비숍여사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목격한 주변의 자연경관과 주민들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이 직접 배를 타고 한강 물길을 헤쳐 올라가면서 살펴본 한강의 교역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50리쯤 올라간 곳에서부터, 마을들은 모두 '농촌'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좀더 아래쪽에서는 많은 양의 땔나무와 석탄이......서울의 일용품으로 팔려가고 있다......서울로부터, 소금, 옷감, 천을 만드는데 쓰는 외국물품들과 함께 쇠그릇들이 수입되며, 쌀, 곡물, 담배 등으로 대가가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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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교

한강 인도교

스토------- ㅂ ......
항구의 종점이올시다.
때때로 임자없는 모자들이 난간에 걸려서는
『人(인)生(생)도 잘있더라』고 바람에 펄럭입니다.
그러므로 기둥 및에는 아가씨들을 위하야
커-다란 눈물받기가 놓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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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배

한강오리배를 탈 수 있는 곳. 2인이 패달을 밟으면 나가는 방식이며, 10미터 안팎의 구역 밖으로는 나갈 수 없게 줄이 둘러져있다. 파라다이스와 아리랑배 중 선택해서 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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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1급수지표종인 수달이 한강에 나타났다. 한강유역에서 수달은 상수원인 팔당댐 너머에 소수의 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중호우시 상류에서 물이 불어나면 수변에 사는 동물들이 물살에 휩쓸려 오다가 서식지와 먼 곳에서 좌초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 수달도 그런 경우라고 예측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수달이 비교적 오랜 시간, 한곳에 정착하여 살아간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단지 헤엄치는 영상만이 아닌, 배설물이 발견되고, 먹이 활동을 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수달이 보금자리로 삼는 암반지형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물 역시 수달 발견 장소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열악하나마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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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개의 촛불

자전거 도로와 인도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있는 언덕길로 연결 되어있다. 그 길과 강 사이는 폭이 50센치정도 되는 각진 돌들이 무심하게 쌓여있다. 뭍과 물 사이는 높이차가 있고 꽤 가파라보여서 인도에서는 어떤식으로 돌이 쌓여져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강둑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사각지대에 누군가가 와서 기도를 한다. 이 돌들 위에 촛불들을 켜놓는다. 수십-수백개의 촛불이 바람이 불때마다 휘청거리면서도 연한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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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저자도

쿵쿵쿵.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막 이 모래섬에 도착했다. 배를 모래 위에 정박시켜놓고나서 섬 위로 올라서니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다른 한강 지류와는 달리 이 섬주변에는 물이 맑고 물고기가 사방에서 튀어오른다. 아마 물속을 들여다보면 물반 고기반이지 않을까. 오래된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지금은 지도 위에서 사라진 섬. 사라졌지만 다시 재생되고 있는 섬. 저자도. 40여년이 지난 지금 과거 저자도 위치에 다시 돌과 흙이 퇴적되며 생긴 이곳에 우리는 막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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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밤섬에서는 친척끼리도 당사자들의 마음만 있으면 서로 시집가고 장가를 간다. 비록 4,5촌의 근친이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 혼처를 구할 필요 없이 동거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섬은 사방이 강물로 싸여 있으므로 이웃한 마을이 없는 까닭에 그들의 소행이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것을 이유로 깊고 얕은 강물을 건너 섬을 드나들 때마다 남녀가 서로 끼고 부둥켜 안는 등 음란하기 이를 데 없다
-명종실록 11년 4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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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번풍경

소년은, 드디어, 그렇게도 동경하여 마지않던 서울로 올라오고야 말았다.(중략) 소년은 행길 한복판을 거의 쉴 사이 없이 달리는 전차에가, 신기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싶게 올라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머리에, 등덜미에, 잠깐동안 부러움 가득한 눈을 주었다. (중략) 전차도 전차려니와, 웬 자동차며 자전거가 그렇게 쉴새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장이 선 듯도 싶지 않건만, 사람은 또 웬 사람이 그리 거리에 넘치에 들끓느냐. 이층, 삼층, 사층(중략). 웬 집들이 이리 높고, 또 그 위에는 무슨 가난이 그리 유난스리도 많이 걸려 있으냐 (중략) 소년으로도, 어느틈엔가, 제풀에 딱 벌려진 제 입을 어쩌는 수 없이, 마분지 조각으로 고깔을 만들어 쓰고, 무엇인지 종이조각을 돌리고 있는 사나이 모양에도, 그의 눈은, 쉽사리 놀라고 수많은 깃대잡이 아이놈들의 앞장을 서서, 몽당수염난 이가 신나게 부는 날라리 소리에도, 어린이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들떴다. (중략) 나는 그렇게도 오고 싶어 마지 않았던 서울에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이 생각이 소년의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그 모든 것에 감격을 주었다.
-박태원 『천번풍경』 , 깊은샘, 2000, 4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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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빩안 기관차

느으릿 느으릿 한눈 파는 겨룰에
사랑이 수히 얼알어질가도 싶구나.
어린 아이야, 달려가쟈.
두뺨에 피여오른 어여쁜 불이
일즉 꺼저버리면 어찌 하쟈니?
줄 다름질 처 가쟈.
바람은 휘이, 휘잉.
만틀 자락에 몸이 떠오를 듯.
눈보라는 풀. 풀.
붕어새끼 꾀어내는 모이 같다
어린 아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새빩안 기관차처럼 달려 가쟈!
-『새빩안 기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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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2013년 여의도와 뚝섬한강공원에 처음 설치됐던 한강공원 여름 캠핑장은 2014년 잠원, 잠실까지 설치돼 총 4곳으로 늘었다. 텐트는 약 400동~500동이 운영된다. 캠핑장에서 한달동안만도 약 10만여 명(텐트 1동에 4인 기준)이 한강변 캠핑의 매력을 즐겼다. 한강 캠핑장이 편리한 건 ‘몸만 오면 된다’는 점. 5인 기준 텐트를 2만 원에 빌릴 수 있다. 테이블(6000원), 매트(2000원), 랜턴(2000원), 플라스틱 등받이 의자(1000원) 등 각종 장비도 빌릴 수 있다. 비록 취사는 할 수 없지만 바비큐장이 유료로 운영된다. 난지 캠핑장은 연중 운영되며 4인 기준 텐트를 단돈 1만5000원에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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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대교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1년 5월 29일 KBS 9시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서울 올림픽대교 위에서 조형물 설치 작업을 하던 군용 헬기가 추락했습니다. 조종사 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안타까운 사고의 순간을 먼저 김원장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오늘 낮 4시 50분 한강 올림픽대교 위에서 국군 시누크 헬기의 조형물 설치 작업이 한창입니다.
다리 주탑 위에 불꽃모양의 조형물 설치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 갑자기 헬기 바닥의 케이블이 횃불 조형물과 엉켰습니다.
헬기가 엉킨 케이블을 풀려고 기수를 낮추는 순간 프로펠러가 조형물과 부딪치고 맙니다.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헬기, 몸체와 프로펠러가 분리돼 나갔습니다.
몸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승무원 한 명이 튕겨져 나와 헬기와 같이 추락합니다. ⊙차희숙(비디오 촬영자): 오! 사고헬기가 폭파됐어. 빨리 KBS에 연락해!
⊙기자: 사고 헬기 프로펠러 부분은 다리 위에, 몸체는 대교 아래 한강으로 떨어졌습니다.
다리 위에는 종이장처럼 찢겨진 헬기의 잔해가 흩어져 있습니다.
⊙목격자: 순식간에 딱 부딪치자 마자 허공에서 두 바퀴 정도 돌다가 그대로 떨어졌습니다.
⊙기자: 강물 속으로 떨어진 사고 헬기의 본체입니다.
앞쪽 프로펠러가 심하게 찢겨졌고 엔진 부분도 떨어져나갔습니다.
오늘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조종사 두명과 정비사 한명 등 세 명이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올림픽대교는 교통을 통제해 민간인 피해는 없었습니다.
KBS뉴스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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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폭팔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폭파. 폭파 직전 밤섬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을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이주시켰다. 이 폭파로 잡석 11만 4000m3이 채취됐다고 한다. 트럭으로 4만대 분량이었다. 이로인해 여의도의 둑쌓는 데 필요한 돌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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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1916년, 한강을 도보로 건널 수 있는 인도교(사람이 건널 수 있는 최초의 다리라는 뜻의 한강대교의 옛 이름)가 가설되었다. 1950년 6월 28일 남북 사이의 전쟁이 발발한지 나흘만에 폭파되었다. 다리 위를 건너던 500여 명의 피난민들과 차량들은 물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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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진

원래 강이었던 곳으로 정선이 『경교명승첩』에 있는 송파나루가 있었다. 조선시대 삼남지방과 관동지방의 물품이 서울로 올라오는 중요길목에 있어서 중개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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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들이 많이 앉아있는 자리

계단이 강까지 나있지 않고, 돌덩이들이 강변을 따라 놓여져 있다. 철새들이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자리라 대게 이곳에서 흰 외동가리와 같은 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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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수중보

한강 수위를 고르게 유지하도록 제작되었다.
바닷물이 역류하지 않음. 한강물은 흐르지 않는 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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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습지

신곡보 하류가 지나가는 장항습지는 군사보호경계구역으로 해마다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는 곳이다. 재두루미, 개리, 쇠기러기 등 멸종위기종인 새들이 떼를 지어 습지 곳곳에 모인다. 66만㎡ 규모의 버드나무 군락과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밭에선 827종 생물이 사는데 그중 43종이 법정보호종이다. 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 곳에서 물고기는 민물가마우지를, 작은 포유류들은 삵과 점박이 물범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보호습지로 지정된 이곳은 원래의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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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산

여의도에서 가장 고도가 높았던 곳. 예전에는 양과 말을 치던 해발 32m의 양말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국회의사당이 있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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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

2015년 4월 15일 선유도공원을 산책하던 시민이 상괭이 시체를 발견했다. 이 상괭이는 길이1미터에 회색빛을 띈 것으로 서해안에 주로 서식하는 쇠돌고래과 상괭이로 확인됐다. 한강사업본부는 인천 앞바다에 서식하던 상괭이가 밀물 때 한강으로 들어왔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해 죽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상괭이는 국제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포획이 금지된 돌고래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주로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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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탄

2015년 12월. 한강바닥을 청소하던 용역업체가 작업 도중 6.25전쟁 당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항공기 투하용 미제 폭탄을 발견했다고 한다. 한강철교 4번과 5번 교각 사이 수심 8m아래에서 발견했으며 무게가 450kg에 달하였다. 공군은 폭팔물 처리반을 투입해 현장에서 뇌관을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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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무지개

노량철교는 미국에서 제작한 최신의 신법이요 천하에 드문 것이다. 길이 3천척, 마치 긴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과 같다... -경인철도합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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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바위

쌍바위 아래는 수심이 깊어서 사람들은 쌍바위를 다이빙대로 삼았다. 사방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모래가 쫙 깔려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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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남쪽 노량진쪽에서 양화리까지 죽 백사장이 있었다. 원래의 넓이는 300만평정도나 되었으며 홍수때는 거의 침수되었다가 홍수가 끝나면 하상이 수면에 노출되는 그러한 백사장이었따. 여의섬은 홍수때도 침수되지 않았는데 옛부터 소수의 주민이 채소를 가꾸며 살던 곳이다. 이 여의섬에 비행장이 생긴 것은 일제말기였다. 광복이 되어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박사도, 중국에서 돌아온 김구선생도 이 비행장에 내렸고, 우리의 공군도 여기서 첫 비행을 시작했다. 1967년 12월 27일 여의도 윤중제 공사의 기공식이 거했되었다. 매일같이 1천500명이 동원되었으며 우리나라 유수의 건설회사가 모두 참여하였다. 윤중제와 육지를 연결하기 위해 마포대교와 여의교공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착공에서 준공까지는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를 비롯해 현재는 국회의사당, tv방송국, 증권거래소, 63빌딩, 세계 최대규모의 교회 등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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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교

한강 유일의 2층교량. 처음에는 잠수교라하여 홍수철에는 물에 잠기는 교량이었으나 강남인구의 증가에 따라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어 상단에 또 하나의 교량을 가설햇다. 이 2층교량의 아랫부분은 대형선박 등이 통과할 때면 다리 중간의 15m정도를 크레인으로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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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빗이끼벌레

1mm 안팎의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한 덩어리를 이루는 외래 태형동물로 흐물흐물한 갈색 반투명 덩어리의 모양을 하고 있다. 개체는 매우 작지만 군집을 이루면 상당한 크기로 불어난다. 독성은 없지만 심한 악취가 아는 것이 특징으로 주로 유속이 정체된 호수의 돌, 수초 등에 붙어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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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섬

잠실섬은 소수의 주민이 채소를 가꾸고 잠업에 종사해왔으며 홍수 때는 으례히 침수되는 수해 상습지였다. 잠실의 개발은 섬의 북류는 하도를 정리하여 흐름을 넓게하고 그 대신의 남쪽 하천은 폐쇄함으로써 하중도를 육속화 하여 100만평이 넘는 수면을 매립하였다. 이 잠실지구는 잠실주공아파트, 장미, 미주, 미성, 우성 등의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서 대규모 주택단지 마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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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인 이곳은 기록에 의하면 동서 2000미터, 남북 885미터로 118만 제곱미터나 되는 넓은 섬이 있었다고 한다. 상당한 규모의 마을과 긴백사장과 무성한 갈대숲이 아름다웠고 뱃놀이와 연회의 장이며 기후제의 장소이며 씨름장으로도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1970년대초 압구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강남이 개발되며 이곳의 모래와 자갈을 마구 채취해 건물을 짓는 바람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던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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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간의 고독

이곳에서는 도시의 정수리가 보인다. 도시는 점점 더 팽창해간다. 움직임이 불빛을 깜박이며 흔들거린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도로의 불빛은 마치 갠지스 강위를 떠가는 소원을 담은 촛불같다. 강과 땅은 일그러져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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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 다리확장

노들섬 북쪽으로 연결되는 한강대교는 원래 모래밭이었으며 강수욕장으로 인기 있던 곳이다. 1979년 1월 4일 다리의 폭을 20m에서 40m로 확장공사에 착수, 1981년 12월에 준공하였다. 이때 다리 이름도 ‘한강 인도교’에서 ‘한강대교’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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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 최초 외국인 프랑스 신부들

1887년 현 원효로4가 1번지의 땅 6,500평 토지구입후 신학교 건축하였다. 현재는 성심수녀원,성심여자 중고등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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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

한강 물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퐁당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용도는 주식 및 토토, 암호화폐에 빚내서 투자 한강에서 낚시나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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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사람들

동아일보 1993.02.03.기사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는 ‘쓰레기 섬’ 난지도 주민들의 겨울나기는 힘겹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이달말 완전 폐쇄됨에 따라 그동안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해온 난지도 주민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 속에 새 살길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78년 개장된 난지도 쓰레기매립장 주변에는 현재 벽돌등 골재생산업체, 기업형 폐품수집상, 쓰레기 및 토사 하역조직, 넝마주이 등 4개부류로 주민계층이 분화돼있다. 난지도 주민들 가운데 가장 앞날이 막막한 사람들은 토사를 하역해주고 벌이를 해온 막노동꾼이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살아온 넝마주이들. 이들은 쓰레기산 주변 조립식 주택에서 살고 있다. 쓰레기장 폐쇄로 일자리가 없어진데다 서울시에서 지어준 조립식 주택마저 조만간 철거할 예정이어서 이들의 올겨울은 어느해보다도 춥다. 8백 24가구 4천여명에 달아는 이들에 대해서는 서울시도 일부를 환경미화원으로 채용하는 외에는 대책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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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전 서울시장

여기 한강 여의도는 400만 우리의 기운이다. 여기 한강 여의도는 백억의 모래로 뭉쳐있다. 여기 한강 여의도에 우리의 지혜, 정열, 의욕, 희망 그리하여 우리의 혼마저 들어 뭉쳐 있다. 여기 한강 여의도의 내일을 우리는 지켜야 한다.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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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섬

동아일보 1997.10.27.기사

팔당댐 아래 미사리쪽 한강에 있는 당정섬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섬이다. 인간이 없애버린 섬을 자연이 다시 섬으로 살려낸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섬은 조선시대 한성부 좌윤을 지낸 조필방이 정자를 짓고 살았다 해서 당정으로 이름지어졌다. 선사시대 이해 인류가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 섬에 대재앙이 닥치기 시작한 때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거주지의 대부분이 잠기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나면서 1백여가구가 고향을 등졌고 대홍수가 또다시 닥친 72년에는 당국의 강제 이주조치로 남아있던 20여가구마저 떠나 무인도로 변했다.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86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의 골재채취장으로 당정섬이 활용되면서 섬은 야금야금 사라져 결국 94년 물밑으로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강의 거센 물살은 수면 아래 암반층 위로 퇴적물을 남겼고 한해두해 쌓이던 퇴적토에 버드나무 등 물에 강한 나무와 풀이 뿌리를 내리면서 3년만에 섬모양을 다시 갖추게 됐다. 팔당대교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쪽 한강을 바라보면 10여개의 모래톱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곳이 바로 당정섬 자리다. 동서방향 2.3km, 남북방향 1.25km, 전체면적 2.8km였던 거대한 섬이 10여개의 모래톱으로 부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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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한강에서 자살률 1위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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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가리

한강의 흔한 새인 외동가리는 한강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특히 다리밑, 다리 틈새, 강둑 아래에서 호젓하게 놀고 있는 외동가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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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빵

다리 곳곳, 특히 잘 안보이는 강의 안쪽면들에는 금이 간 자리에 땜빵자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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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도

한강 하류에 있는 하중도.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 0.1 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섬이다.
섬의 남단으로는 김포대교가 지나며, 신곡보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매우 작고 보잘것 없는 섬이지만 1970년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지역으로 설정되어 여태까지 40년 넘도록 민간인 출입을 통제중인 섬이다.[1] 때문에 근처 사는 사람들도 이 섬의 존재 자체는 알지언정 백마도라는 이름이 있는지, 뭘 하는 섬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13년에 정전 60주년을 맞아 딱 하루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사전에 신청을 한 인원 500명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인 2014년에는 김포뱃길축제가 이 섬에서 열렸다.
이렇게 1년에 한 번 정도 민간인에게 공개하는 것 말고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한강 하구에서 철새가 자주 찾는 장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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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1949년에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이곳은 유명한 신혼여행지로 이름을 날릴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섬이었다. 섬의 이름도 난초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난지도였다.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었다. 산업화 과정 동안 서울의 급속한 팽창과 더불어 15년간 9,200만 톤의 쓰레기(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 생활 쓰레기 등)가 적재되어 90 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 두 개로 변했다. 쓰레기 적재량은 계속 늘어나서 하루에 트럭 3,000대 분량의 쓰레기가 버려졌고 마침내 기자 대 피라미드의 33배에 이르렀다. 이 때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일일 쓰레기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쓰레기 소각처리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쓰레기 대부분이 직매립되었다. 매립지의 폐쇄 이후, 서울시는 해당 구역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계획하고 쓰레기 산을 덮고 공원 건설을 시작하였고,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및 다른 혼합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는 인근의 월드컵공원과 월드컵경기장 시설의 열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의 월드컵공원에서 본래의 쓰레기 매립부지에 해당하는 구역은 난지도 제1매립지에 들어선 노을공원과 제 2매립지에 조성된 하늘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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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 한강수영장

여름 두달여간 개장을 한다. 서울시민들이 이용하며, 강과는 자전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여서 급히 물이 오염이 된다. 겨울에는 물을 모두 비워내서 넓고 비어있는 넓은 수영장 바닥에 누워있으면 꽤 상쾌하고 방해받지 않는다. 광나루, 난지, 뚝섬, 여의도, 잠실, 잠원지역에 수영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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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라고 해서 선유봉이라 불렸다. 현재의 모습은 일제가 여의도 한강비행장 조성에 쓴답시고 봉우리를 모조리 깎아내어 흙과 돌을 싹 쓸어간 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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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족

2001년 서울시가 한강변을 자전거도로로 고시한 뒤 대대적인 환경 정비에 나섰다. 현재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총 70km로 강남이 41km, 강북이 29km. 이후 한강의 지천인 안양천 홍제천 불광천 도림천 양재천 등의 자전거도로도 개설됐다. 집 근처에서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손쉽게 갈 수 있는 도로망이 확보되자 ‘한강 자전거족’은 급격히 늘게 된다. 예전에는 한강이 가끔 찾는 관광지였다면 이제는 생활 속 레저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한해 평균 한강에서 자전거를 즐긴 인구는 590만 명이 넘는다. 한강을 출발해 경기 양평 등 지방으로 자전거 여행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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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편의점

한강 편의점은 강가에 있어 홍수에 대비해 점포가 물 위로 떠오르도록 설계돼 있다. 3일 서울시 한강관리본부에 따르면 한강둔치에 운영되고 있는 편의점은 모두 `플로팅 하우스` 방식으로 설치돼있다. 서울시 한강관리본부는 이처럼 예상치못한 폭우가 발생했을 때 편의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입찰 공고에서 매점 건물을 부력기능을 갖는 시설물로 짓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강 편의점 건물 바닥에 비가 올 때 떠오를 수 있도록 밀폐공간을 마련해 물이 차오르면 자동으로 떠오를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다. 다만 건물이 부유해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자리에 설치된 쇠기둥이 지탱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일일이 지게차 등 중장비를 이용해 편의점 건물을 지대가 높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갑자기 한강 수위가 높아져 물이 밀려들면 매점을 못쓰게 되고, 미처 이동시키지 못할 경우 강물에 쓸려 내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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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내 미니스톱 3호점. 여의도공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물빛광장 인근에 있어 한강에 있는 편의점 가운데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한강 편의점의 성수기는 야외 활동이 잦아지는 5월부터 9월 중순. 특히 7, 8월 주말 저녁은 “삐, 삑” 하는 계산대 바코드 리더기가 쉴 틈 없이 울려댄다. 미니스톱에 따르면 한강 매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500mL 카스 캔 맥주다. 2위는 역시 355mL 카스 캔 맥주, 3위는 점보통다리(닭다리), 4위는 생수인 제주워터(500mL), 5위는 즉석 신라면. 상위 10위권에 4개가 맥주고, 3개가 치킨류다. 이른바 ‘치맥’(치킨 맥주 세트의 약어)은 한강에서도 통했다. 한때 인기 메뉴였던 컵라면은 2012년 6월 은박 용기에 ‘끓여 먹는 라면’이 등장한 뒤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맥주와 라면은 얼마나 팔릴까. 미니스톱 관계자는 “여름 주말 기준으로 캔 맥주가 많이 팔릴 때는 2800개까지 팔린다. 라면은 보통 1000개가 나간다”고 말했다. 매점 한 곳에서만 하루 1t 넘게 맥주가 팔리는 셈이다.
다만 한강도 여느 관광지처럼 성수기와 비수기의 판매 차이가 크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미니스톱 3호점의 노수형 실장(53)은 “여름 한철 벌어서 1년을 먹고산다고 보면 된다. 여름 주말에는 하루 1500만 원까지 매출을 올리기도 하지만 비수기 때는 하루 만 원도 못 판 적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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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밀물 때 서해 바닷물이 성동구 옥수동 인근의 동호대교까지 밀려온다. 이 때문에 한강에는 잉어, 붕어 등 민물고기뿐만 아니라 망둥이와 점농어 같은 서해에 사는 바다어종까지 잡힌다. 그만큼 한강은 다양한 어종의 서식지인 셈이다. 서울시가 2013년 광나루, 반포, 여의도, 난지, 잠실 등 5곳에서 어종조사를 펼친 결과를 살펴보면 한강에는 총 38종의 어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에서 파악된 총 3523마리 가운데 누치(478마리)가 가장 많았고 메기(375마리), 동자개(332마리), 가시납지리(215마리), 붕어(202마리) 순이었다. 또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광나루, 반포, 난지 지역에서 잡은 붕어, 잉어, 누치 등 3개 어종의 중금속 검사를 한 결과 식품규격에는 모두 적합했다. 카드뮴은 나오지 않았고 납(2.0mg/kg 이하 적합)은 최대 0.02mg/kg, 수은(0.5mg/kg 이하 적합)은 최대 0.18mg/kg이 나왔다. 모두 식품일반규격(담수어의 중금속 잔류 허용 기준)의 허용 기준치를 밑돌아 식용 기준에는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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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을축년 대홍수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25년 여름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홍수. 한반도 전역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강과 낙동강 일대가 특히나 막심한 타격을 입었다. ‘을축년 장마’ 또는 ‘을축년 홍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1차홍수
타이완 부근에서 생성된 태풍(2559호 태풍)이 7월 11일부터 12일에 걸쳐 한반도를 중부지방을 관통했는데, 이 때문에 황해도 이남 지역에 시간당 300 mm[2]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한강, 금강 및 낙동강 등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주요 강들이 대부분 범람했다.
-2차홍수
7월 16일, 1차 홍수로 생긴 피해를 채 수습하기도 전에 타이완에서 생성된 또다른 태풍(2560호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특히나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피해가 막심하여 누적 강수량 65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한강 수위가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3]를 경신해 한강에 쌓았던 제방이 무너지면서 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된다. 숭례문 바로 앞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서울의 교통과 통신 또한 마비되었다. 당시 서울 전역에 익사자만 400여 명에 가옥 1만 2천여 호가 유실되었다. 특히나 동부이촌동·뚝섬·송파구·잠실동·신천동·풍납동 일대 피해가 막심했다. 심지어 송파구에는 홍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이듬해(1926) 이재민들이 세운 비석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정도.[4] 아이러니하게도 2차 홍수가 뜻밖에 가져온 이점도 있었다. 지층이 쓸려가는 바람에 땅에 파묻혀있던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었고 풍납토성 서벽이 유실되면서 각종 유물이 확인되어 주목을 받았던 것. 그러나 이때 풍납토성의 서쪽 성벽은 완전히 쓸려나가 현재까지도 복원되지 않았으나 2017년 조사에서 서벽과 성문 흔적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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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

임니별 하든날 밤에 나는 어히 못쥭었노
한강슈 깁은 물에 풍덩실 빠지련만
지금에 사라 잇기는 임보랴고
『남훈태평가』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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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한강에 놓인 최초의 근대식 다리이다. 일본은 미국인 모오스가 따낸 경인철도 부설권을 인수하여 한강철교를 완공시켰다.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놓여진 경인철도는 한강철교에 의해 서울역까지 연결되었따. 이어 1905년에는 일본에 의해 경부철도가 완공됨으로써 철도의 수송량이 급증하였다. 철도는 기존의 운송체계를 일거에 뒤바꾸면서 한국의 교통과 상업체계를 재편시켰다. 철도가 육상교통의 왕자로 자리잡으면서 지역발전의 공식 역시 일변하였다. 이전까지 상업중심지로 번창하였던 강변 나루터와 포구의 중요성은 감소한 반면, 철도 연변을 따라 신흥도시가 발달하였다. 예를들어 영등포는 철도부설 당시 겨우 10여 호의 농가가 산재해 있는 시흥군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그런데 1905년 경부철도 완공 이래 철도 수송량이 급증하면서 이곳에는 시가지가 조성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관공서, 학교 등의 시설이 집중되었다. 철도부설을 계기로 영등포는 오늘날과 같은 강남 제1의 부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던 것이다.